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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ate : 10-07-23 14:00
  무령왕릉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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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1년 7월 7일부터 동년 10월 28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발굴됨으로써 그 전모가 드러났다. 송산리(宋山里) 제5, 6호분과 서로 봉토(封土)를 접하고 있다. 분구(墳丘)는 지름 약 20m의 원형(圓形) 플랜을 가지며 널방[墓室]의 바닥면에서 분정(墳頂)까지 7.7m이다. 널방은 연화문전(蓮華文塼)·문자전(文字塼) 등으로 쌓여진 단실묘(單室墓)로 평면 4.2m×2.72m의 크기인데 북으로 축선(軸線)을 둔다.

천장은 아치를 성하고 바닥면으로부터의 최고값은 2.93m이다. 벽면에는 제6호분과 똑같은 모양의 소감(小龕)과 그 아래에 연자창(連子窓) 모양으로 된 것을 북쪽 벽에 1개 동·서벽에 각각 2개를 만들고 각 감내에는 등잔(燈盞)이 들어간다. 출토된 유물은 백제고분으로서 전례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화려하다.

널길[羨道]에서 발견된 한 개의 뿔을 가진 철제(鐵製) 석수(石獸), 청자육이호(靑瓷六耳壺) 동제(銅製)의 발(鉢)·시(匙)·오주전(五銖錢)과 함께 이 분묘의 피장자(被葬者)가 무령왕 부부임을 밝히는 각자석판(刻字石板) 2장이 나왔다.

널방[玄室]에는 청자사이병(靑瓷四耳甁)·청동용기류(靑銅容器類)·철모(鐵鉾)·현금(玄琴) 등의껴묻거리[副葬品]와 금·은의 식금구(飾金具)가 달린 흑칠(黑漆)이 칠해진 목관(木棺)이, 왕의 것은 동쪽에, 왕비의 것은 서쪽에 매치(埋置)되어 있었다.

붕괴된 관 안에는 목침·족좌(足座)·동경(銅鏡)·단룡환두(單龍環頭)의 칼, 울두(熨斗)와 동제(銅製)의 용기류 화염형관식(火焰形冠飾)·수식(首飾)·이식(耳飾)·과대(銙帶)·식리(飾履)·팔찌[釧] 등의 꾸미개[裝身具]가 들어 있었다. 또한 왕비의 제3대구치(第三大臼齒)가 출토되었다.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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